민혜령 작가 인터뷰 (Click here to read in English)
따뜻한 날씨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던 봄의 시작에 민혜령 작가를 만났다.
The Hours Breathe에서 아이들과의 시간을 이처럼 고요하고도 아름답게 담아낸 작가는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며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감정들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조용히 풀어내는 사람이다. 오랜 시간 사진기를 들었고,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해본 그는 여러 시리즈를 선보였지만 그 바탕에는 늘 같은 동기가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무언가와의 연결, 개인적 세계의 해방,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표현하고 싶다.
작가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며 ‘관계나 감정의 고리’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를 걸어 메고 각자의 길로 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때론 앞으로, 때론 뒤로, 때로는 옆걸음질 치며. 이 고리들을 묶었다 풀어내며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용감한 결정들을 해온 민혜령 작가가 앞으로 한국에서 선보일 작업이 더욱 기대된다.
by 하버프레스 최상희
작가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민혜령이라고 합니다. 사진 작업을 하고 있고, 16년동안 미국에 있다가 쌍둥이의 엄마가 되었고, 예술가 부부로서 사진작가인 남편과 함께 귀국을 한지 이제 4년차 되었습니다.![]()
처음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보면, 제가 초등학교때는 집마다 카메라가 있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소풍 가거나 이러면 자랑스럽게 자동 카메라를 가지고 가고, 찍으면 현상소 달려가가지고 보고. 필름에다가 쓰는 거거든요. 두 장 더, 세 장 더. 그걸 다시 찾아가지고 봉투에 사람 별로 넣어서 나눠주고 하는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사실 전공이 독어독문이고 광고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사진에 더 뜻이 있어서 졸업하고는 패션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는데 계속 거기에 있다가는 패션 스튜디오 작가가 될 것 같았어요. 개인 작업을 하고 싶어서 유학을 결정을 하고 뉴욕으로 가게 된 거예요.
뉴욕에서 사진을 제대로 시작하신거네요?
네. 학교에 가서 사실 고민이 좀 많았어요. 나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기초를 다시 배워야 되니까요. 근데 또 학생이라는 신분이 어떤 사회에서든지 가장 완벽한 그런 어떤 핑계(excuse)라고 할까요? 그런게 있는 신분이잖아요. 학교에 있는 암실 쓸 수 있고 스튜디오도 쓸 수 있고 하니까 활용할 수 있었고, 나중에 SVA(School of Visual Art) 디지털 사진 대학원에 가서 디지털에 관련된 것도 배우고 그랬죠.
과거 유학지로 왜 뉴욕을 선택하신 것 같나요?
제가 유학을 갈 때는 인터넷으로 어떤 정보를 찾는 게 완전히 불가능했어요. 유학을 가려면 1년에 한 번 있는 유학페어나 아니면 종로에 있는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서류도 다 손으로 작성했었죠. 학교에 연락을 하려고 해도 파란색 윈도우로 이메일 보냈었는데요. 정말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뉴욕이 미국의 동부인지 서부인지도 몰랐는데 그냥 뉴욕이 좋았어요. 그래서 학교를 여러 군데 넣긴 했는데 뉴욕을 집중적으로 지원을 했고.
뉴욕이 어떤 나라의 도시라기보다는 그 도시 자체가 한 특별한 장소로서의 매력으로 다가와서 그곳을 선택했어요.
실제 뉴욕으로 갔을 때, 도시의 캐릭터로 어떤 것들을 느끼셨나요?
베를린이나 런던, 뉴욕 이런 곳들에 공통된 점이 분명히 있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너무나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이고 또 그 중심이 뉴욕이기 때문에 내가 그냥 나인체로 있을 수 있는 도시였던 것 같아요.
사실 그것을 다 알고 가진 못했어요. 가서 지내다 보니까 그런 도시라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고 계속 새롭고, 낯섬과 익숙함이 교차되며 지속되는 매력 때문에 계속 있게 된 것 같아요.
작가님이 사진으로 어떤 주제를 표현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요소가 있나요?
작업이라는 건 굉장히 긴 프로세스인데다가 작가들마다 중요한 포인트가 좀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촬영하는 그 순간이 저에게는 사실 가장 중요하고요. 제 작업의 대부분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카메라라는 매체로 순간 포착을 하는 그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저 스스로에게 주는 어
편집하거나 셀렉을 하고 전시로 내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책을 만드는 것은 형식적인 것으로 제게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제가 거기에다가 구현하는 것들은 사람들 사이에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고리들, 문제의 고리일 수도 있고 어떤 감정의 고리일 수도 있겠죠, 아니면 기억. 제 작업에 들어가는 키워드들은 이런것들 인 것 같아요.
그런 추상적 관념들을 계속 담아내고 포착하려는 시도가 작가님 작업에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The Hours Breathe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피사체는 사실 저에게는 정해져 있지 않아요.
길거리 행인이 될 때도 있었고 창밖에 보이는 이웃인 경우도 있었고 조카일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 작업들이 시작하는 시점은 제 삶에서 어떤 포인트가 반영이 되는 것들이에요.
예를 들어 Personal Landsc 같은 경우에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을 떠나야 하는, 그냥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을 하던 사람이었거든요. 드디어 미국 가는 비행기에 올랐는데 갈 때부터 정말 펑펑 울었던거죠. 도착하자마자 뉴욕이라는 그 낯선 곳에서 계속 한국을 찾는 거예요. ‘저 골목을 돌아가면 우리 집 뒷골목이 보일 거야. 고개를 들면 뒷산이 보일 거야.’
나는 어디에 속하는 거지?
이 혼란은 어디로 가는 거지?
내가 그리워하는 곳은 여기인가 한국인가?
혼란이 컸어요.
한국에 오면 또 뉴욕에 있는 정말 손바닥만한 방이 너무 그리웠거든요.
그래서 몇 년 동안 두 도시의 아카이브 작업을 해서 그걸 디지털 합성을 했고 그게 Personal Landscape로 탄생했어요.
또 The Hours Breathe같은 경우에는
2018년에 아이 엄마가 되면서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남자 쌍둥이를 키우면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듯한 생활을 하던 중에 어느 순간 주위의 낯선 물건들이 저한테 말을 거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잠깐 멈춰봐 나랑 인사 한 번도 안 했잖아.’ 이런 메시지를 저한테 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촬영하게 되었어요.
일기장 작업 역시도
오랜시간 쓴 일기들을 작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했는데 감히 그 일기장이 있는 박스를 한국에서 가져와서 열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제가 ‘40이 되기 전에 내가 이거는 풀어야 된다.’ 결심을 했거든요, 숙제처럼요. 입주 작가를 하고 어딘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Woodstock에 있는 예술촌으로 가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일기라는 것이 사실 손으로 쓰는 그 순간 부터 어떤 표현이든 왜곡이 들어가는 거잖아요. 내 입장으로, 내 시점으로요. 처음 썼을 때도 분명히 어떤 왜곡이 있었겠죠. 그리고 제가 다시 읽었을 때, 사진으로 표현했을 때 기억이 재차 재구성되는 그 지점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한글 제목은 ‘기억의 재구성’이고 영어로는 Re-membrance of the Remembrance라고 붙였어요. 기억이 내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재구성되고 하는지 그런 걸 지켜보는 과정을 즐긴 작업이에요.
저는 작가님의 The Hours Breathe시리즈를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고요하고 정적으로 담겨있어 놀랐는데요. 저도 아이를 키워서 알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전혀 고요하거나 정돈되어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때와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느끼실것도 같은데요. 해당 작업을 가끔 돌아보기도 하시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이 조금 더 사람의 모습으로, 어른인 저와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게 돼서 이제 이 작업은 여기서 마무리하면 되겠다 생각한 거예요. 예를 들어, 물컵도 나와 같은 물컵을 써도 되고, 이불도 나와 같은 걸 써도 되고, 내가 보는 사진집을 같이 봐도 사진집을 망가트리지지 않고 볼 수 있는 나이가 됐고요.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굉장히 정돈되고 혼란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직 한참은 더 걸릴 것 같긴 한데, 지금 돌아 봤을 때는 그 물건들이 벌써 추억 속의 물건이 되었죠.
어떤 것들은 아이들이 기억도 못 하는 것도 있고, 아니면 기억난다며 가지고 놀다가 하루 지나면 또 잊어버리곤 하는 것들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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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이들의 물건, 지나가는 시간들을 기록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저는 이제 물건을 버리는게 어려워졌어요. 아이들도, ‘엄마 이거는 촬영해야지. 사진 찍어야지. 앞으로도 찍고, 위로도 찍고 해야지.’라고 말하곤 해요.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낮잠잘 때, 아니면 밤잠 잘 때만 촬영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 아이들이 자라 그 창작 과정을 알게 된 거예요.
어떨 땐 곤충 한 마리를 잡아도, ‘엄마 이거 놔줄 건데, 얘 좀 찍어줘. 자, 이렇게 앞으로 찍고, 이쪽도 찍고. 얼굴 잘 나오게 찍어줘.’ 요청해요. 어찌보면 가족 전체에게 사진 찍는 게 습관이 된거 같아요.
작가님 부부에게 한국은 꽤 낯선 곳일 것 같습니다.
하이메는 과테말라, 이스라엘, 뉴욕을 거쳐 한국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의 삶이 계속되는 사람이에요.
굉장히 많은 언어를 할 수 있고 이방인의 삶이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한국이라는 것은 그 어떤 다른 도시랑은 또 달랐던 것 같아요. 아시아였고, 어느 정도 배우긴 했지만 언어 장벽이 너무나 높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 개인전을 했던 작업의 제목이 Blindness였어요. 자기 삶이 어떻게 보면 이런 어둠(blindness)을 느끼고 있는 거겠죠. 이처럼 자기 나름대로 이 생활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쉽지는 않겠죠.
저 역시 한국에서 사진학과를 나오거나 뉴욕에 가기 전에 작업을 했던 게 아니어서 이곳에서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몰랐어요. 그리고 뉴욕에 있는 16년 사이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바뀐 것 같고요. 그래서 돌아왔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바로 감을 잡기 어려웠어요. 사실 외국인인 하이메만큼이나 저도 약간 길을 잃은 듯한 그런 느낌이었죠.
2023년에는 KT&G SKOPF에 선정되셨고, 현재 사루비아 갤러리 아웃리치 & 서포트 프로그램도 참여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작업 환경은 어떻다고 생각되시나요?
뉴욕에서는 사실 전시나 공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국내에서 한다고해도, 몇 시간 멀리 있는 서부에서 진행이 되면 제 전시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요. 미팅 같은 경우에는 당연히 줌으로 하고 작업을 보낼 때도 대부분 항공 운송을 해야 해요. 그 스케일이 좀 다른 거죠. 그리고 뉴욕에선 꼭 미국 안에서 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세계로 전시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쉽게 다가왔고요.
근데 한국에 와보니까 아무래도 시장이 작기 때문에 조금 더 실질적인 거리와 심리적 거리까지도 굉장히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이 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하는 일은 비슷한 부분도 또 있다고 느껴지고요.
또 다른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는 사업의 경우에 결과나 보고서가 있어야 되고 그 중간 과정을 기록해야 하잖아요. 외국에는 사실 그런 게 거의 없고 지원금 받으면은 그걸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작가가 24시간 작업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작가도 렌트를 내고 밥을 먹고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그 돈을 아이 분유 사는데 쓰든 필름을 사는데 쓰든 그거는 작가의 마음인 거죠. 대신에 그래도 한국은 지원을 다방면으로 많이 해주는 것 같아서 그점은 좋더라고요.
작가님께서 한국에 계시면서 최근 관심있게 보고계신 주제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다음 작업에 대한 예고편이라고 할까요?
The Hours Breathe에서 나온 이미지들을 다시 예를 들어보자면,
카메라 뒤로는 아이들 울음소리와 온갖 설거지 더미들, 빨래더미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굉장히 원하는 그런 정적을 찾은 거잖아요. 제가 막 숨이 이렇게 차오르고 숨을 쉴 수가 없었던 그런 순간에, 그 아이들(정물들)과의 그 찰나가 저에게 약간의 숨을 쉴 수 있게 해줬던 거였어서 사진들이 그렇게 고요하게 보여지는 거 같거든요.
같은 원리로 지금 보는 시골의 모습이나 자연같은 것들도 그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저의 어떤 모습이 보여지기 때문에 카메라에 담고 싶어질거 같아요. 그게 어떤 모습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려고요.(웃음)
민혜령 작가의 자화상
본 글의 모든 사진: 민혜령
“제 작업의 대부분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카메라라는 매체로
순간 포착을 하는 그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해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카메라라는 매체로
순간 포착을 하는 그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해요.”
따뜻한 날씨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던 봄의 시작에 민혜령 작가를 만났다.
The Hours Breathe에서 아이들과의 시간을 이처럼 고요하고도 아름답게 담아낸 작가는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며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감정들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조용히 풀어내는 사람이다. 오랜 시간 사진기를 들었고,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해본 그는 여러 시리즈를 선보였지만 그 바탕에는 늘 같은 동기가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무언가와의 연결, 개인적 세계의 해방,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표현하고 싶다.
작가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며 ‘관계나 감정의 고리’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를 걸어 메고 각자의 길로 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때론 앞으로, 때론 뒤로, 때로는 옆걸음질 치며. 이 고리들을 묶었다 풀어내며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용감한 결정들을 해온 민혜령 작가가 앞으로 한국에서 선보일 작업이 더욱 기대된다.
by 하버프레스 최상희
작가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민혜령이라고 합니다. 사진 작업을 하고 있고, 16년동안 미국에 있다가 쌍둥이의 엄마가 되었고, 예술가 부부로서 사진작가인 남편과 함께 귀국을 한지 이제 4년차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보면, 제가 초등학교때는 집마다 카메라가 있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소풍 가거나 이러면 자랑스럽게 자동 카메라를 가지고 가고, 찍으면 현상소 달려가가지고 보고. 필름에다가 쓰는 거거든요. 두 장 더, 세 장 더. 그걸 다시 찾아가지고 봉투에 사람 별로 넣어서 나눠주고 하는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사실 전공이 독어독문이고 광고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사진에 더 뜻이 있어서 졸업하고는 패션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는데 계속 거기에 있다가는 패션 스튜디오 작가가 될 것 같았어요. 개인 작업을 하고 싶어서 유학을 결정을 하고 뉴욕으로 가게 된 거예요.






뉴욕에서 사진을 제대로 시작하신거네요?
네. 학교에 가서 사실 고민이 좀 많았어요. 나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기초를 다시 배워야 되니까요. 근데 또 학생이라는 신분이 어떤 사회에서든지 가장 완벽한 그런 어떤 핑계(excuse)라고 할까요? 그런게 있는 신분이잖아요. 학교에 있는 암실 쓸 수 있고 스튜디오도 쓸 수 있고 하니까 활용할 수 있었고, 나중에 SVA(School of Visual Art) 디지털 사진 대학원에 가서 디지털에 관련된 것도 배우고 그랬죠.
과거 유학지로 왜 뉴욕을 선택하신 것 같나요?
제가 유학을 갈 때는 인터넷으로 어떤 정보를 찾는 게 완전히 불가능했어요. 유학을 가려면 1년에 한 번 있는 유학페어나 아니면 종로에 있는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서류도 다 손으로 작성했었죠. 학교에 연락을 하려고 해도 파란색 윈도우로 이메일 보냈었는데요. 정말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뉴욕이 미국의 동부인지 서부인지도 몰랐는데 그냥 뉴욕이 좋았어요. 그래서 학교를 여러 군데 넣긴 했는데 뉴욕을 집중적으로 지원을 했고.
뉴욕이 어떤 나라의 도시라기보다는 그 도시 자체가 한 특별한 장소로서의 매력으로 다가와서 그곳을 선택했어요.
실제 뉴욕으로 갔을 때, 도시의 캐릭터로 어떤 것들을 느끼셨나요?
베를린이나 런던, 뉴욕 이런 곳들에 공통된 점이 분명히 있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너무나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이고 또 그 중심이 뉴욕이기 때문에 내가 그냥 나인체로 있을 수 있는 도시였던 것 같아요.
사실 그것을 다 알고 가진 못했어요. 가서 지내다 보니까 그런 도시라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고 계속 새롭고, 낯섬과 익숙함이 교차되며 지속되는 매력 때문에 계속 있게 된 것 같아요.
작가님이 사진으로 어떤 주제를 표현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요소가 있나요?
작업이라는 건 굉장히 긴 프로세스인데다가 작가들마다 중요한 포인트가 좀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촬영하는 그 순간이 저에게는 사실 가장 중요하고요. 제 작업의 대부분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카메라라는 매체로 순간 포착을 하는 그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저 스스로에게 주는 어









편집하거나 셀렉을 하고 전시로 내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책을 만드는 것은 형식적인 것으로 제게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제가 거기에다가 구현하는 것들은 사람들 사이에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고리들, 문제의 고리일 수도 있고 어떤 감정의 고리일 수도 있겠죠, 아니면 기억. 제 작업에 들어가는 키워드들은 이런것들 인 것 같아요.
그런 추상적 관념들을 계속 담아내고 포착하려는 시도가 작가님 작업에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The Hours Breathe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피사체는 사실 저에게는 정해져 있지 않아요.
길거리 행인이 될 때도 있었고 창밖에 보이는 이웃인 경우도 있었고 조카일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 작업들이 시작하는 시점은 제 삶에서 어떤 포인트가 반영이 되는 것들이에요.





예를 들어 Personal Landsc 같은 경우에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을 떠나야 하는, 그냥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을 하던 사람이었거든요. 드디어 미국 가는 비행기에 올랐는데 갈 때부터 정말 펑펑 울었던거죠. 도착하자마자 뉴욕이라는 그 낯선 곳에서 계속 한국을 찾는 거예요. ‘저 골목을 돌아가면 우리 집 뒷골목이 보일 거야. 고개를 들면 뒷산이 보일 거야.’
나는 어디에 속하는 거지?
이 혼란은 어디로 가는 거지?
내가 그리워하는 곳은 여기인가 한국인가?
혼란이 컸어요.
한국에 오면 또 뉴욕에 있는 정말 손바닥만한 방이 너무 그리웠거든요.
그래서 몇 년 동안 두 도시의 아카이브 작업을 해서 그걸 디지털 합성을 했고 그게 Personal Landscape로 탄생했어요.









또 The Hours Breathe같은 경우에는
2018년에 아이 엄마가 되면서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남자 쌍둥이를 키우면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듯한 생활을 하던 중에 어느 순간 주위의 낯선 물건들이 저한테 말을 거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잠깐 멈춰봐 나랑 인사 한 번도 안 했잖아.’ 이런 메시지를 저한테 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촬영하게 되었어요.








일기장 작업 역시도
오랜시간 쓴 일기들을 작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했는데 감히 그 일기장이 있는 박스를 한국에서 가져와서 열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제가 ‘40이 되기 전에 내가 이거는 풀어야 된다.’ 결심을 했거든요, 숙제처럼요. 입주 작가를 하고 어딘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Woodstock에 있는 예술촌으로 가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일기라는 것이 사실 손으로 쓰는 그 순간 부터 어떤 표현이든 왜곡이 들어가는 거잖아요. 내 입장으로, 내 시점으로요. 처음 썼을 때도 분명히 어떤 왜곡이 있었겠죠. 그리고 제가 다시 읽었을 때, 사진으로 표현했을 때 기억이 재차 재구성되는 그 지점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한글 제목은 ‘기억의 재구성’이고 영어로는 Re-membrance of the Remembrance라고 붙였어요. 기억이 내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재구성되고 하는지 그런 걸 지켜보는 과정을 즐긴 작업이에요.
저는 작가님의 The Hours Breathe시리즈를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고요하고 정적으로 담겨있어 놀랐는데요. 저도 아이를 키워서 알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전혀 고요하거나 정돈되어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때와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느끼실것도 같은데요. 해당 작업을 가끔 돌아보기도 하시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이 조금 더 사람의 모습으로, 어른인 저와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게 돼서 이제 이 작업은 여기서 마무리하면 되겠다 생각한 거예요. 예를 들어, 물컵도 나와 같은 물컵을 써도 되고, 이불도 나와 같은 걸 써도 되고, 내가 보는 사진집을 같이 봐도 사진집을 망가트리지지 않고 볼 수 있는 나이가 됐고요.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굉장히 정돈되고 혼란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직 한참은 더 걸릴 것 같긴 한데, 지금 돌아 봤을 때는 그 물건들이 벌써 추억 속의 물건이 되었죠.
어떤 것들은 아이들이 기억도 못 하는 것도 있고, 아니면 기억난다며 가지고 놀다가 하루 지나면 또 잊어버리곤 하는 것들도 있어요.


그렇게 아이들의 물건, 지나가는 시간들을 기록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저는 이제 물건을 버리는게 어려워졌어요. 아이들도, ‘엄마 이거는 촬영해야지. 사진 찍어야지. 앞으로도 찍고, 위로도 찍고 해야지.’라고 말하곤 해요.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낮잠잘 때, 아니면 밤잠 잘 때만 촬영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 아이들이 자라 그 창작 과정을 알게 된 거예요.
어떨 땐 곤충 한 마리를 잡아도, ‘엄마 이거 놔줄 건데, 얘 좀 찍어줘. 자, 이렇게 앞으로 찍고, 이쪽도 찍고. 얼굴 잘 나오게 찍어줘.’ 요청해요. 어찌보면 가족 전체에게 사진 찍는 게 습관이 된거 같아요.
작가님 부부에게 한국은 꽤 낯선 곳일 것 같습니다.
하이메는 과테말라, 이스라엘, 뉴욕을 거쳐 한국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의 삶이 계속되는 사람이에요.
굉장히 많은 언어를 할 수 있고 이방인의 삶이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한국이라는 것은 그 어떤 다른 도시랑은 또 달랐던 것 같아요. 아시아였고, 어느 정도 배우긴 했지만 언어 장벽이 너무나 높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 개인전을 했던 작업의 제목이 Blindness였어요. 자기 삶이 어떻게 보면 이런 어둠(blindness)을 느끼고 있는 거겠죠. 이처럼 자기 나름대로 이 생활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쉽지는 않겠죠.
저 역시 한국에서 사진학과를 나오거나 뉴욕에 가기 전에 작업을 했던 게 아니어서 이곳에서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몰랐어요. 그리고 뉴욕에 있는 16년 사이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바뀐 것 같고요. 그래서 돌아왔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바로 감을 잡기 어려웠어요. 사실 외국인인 하이메만큼이나 저도 약간 길을 잃은 듯한 그런 느낌이었죠.
2023년에는 KT&G SKOPF에 선정되셨고, 현재 사루비아 갤러리 아웃리치 & 서포트 프로그램도 참여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작업 환경은 어떻다고 생각되시나요?
뉴욕에서는 사실 전시나 공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국내에서 한다고해도, 몇 시간 멀리 있는 서부에서 진행이 되면 제 전시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요. 미팅 같은 경우에는 당연히 줌으로 하고 작업을 보낼 때도 대부분 항공 운송을 해야 해요. 그 스케일이 좀 다른 거죠. 그리고 뉴욕에선 꼭 미국 안에서 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세계로 전시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쉽게 다가왔고요.
근데 한국에 와보니까 아무래도 시장이 작기 때문에 조금 더 실질적인 거리와 심리적 거리까지도 굉장히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이 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하는 일은 비슷한 부분도 또 있다고 느껴지고요.
또 다른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는 사업의 경우에 결과나 보고서가 있어야 되고 그 중간 과정을 기록해야 하잖아요. 외국에는 사실 그런 게 거의 없고 지원금 받으면은 그걸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작가가 24시간 작업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작가도 렌트를 내고 밥을 먹고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그 돈을 아이 분유 사는데 쓰든 필름을 사는데 쓰든 그거는 작가의 마음인 거죠. 대신에 그래도 한국은 지원을 다방면으로 많이 해주는 것 같아서 그점은 좋더라고요.
작가님께서 한국에 계시면서 최근 관심있게 보고계신 주제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다음 작업에 대한 예고편이라고 할까요?
The Hours Breathe에서 나온 이미지들을 다시 예를 들어보자면,
카메라 뒤로는 아이들 울음소리와 온갖 설거지 더미들, 빨래더미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굉장히 원하는 그런 정적을 찾은 거잖아요. 제가 막 숨이 이렇게 차오르고 숨을 쉴 수가 없었던 그런 순간에, 그 아이들(정물들)과의 그 찰나가 저에게 약간의 숨을 쉴 수 있게 해줬던 거였어서 사진들이 그렇게 고요하게 보여지는 거 같거든요.
같은 원리로 지금 보는 시골의 모습이나 자연같은 것들도 그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저의 어떤 모습이 보여지기 때문에 카메라에 담고 싶어질거 같아요. 그게 어떤 모습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려고요.(웃음)

본 글의 모든 사진: 민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