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ually Sauntering the Perimeter of Now by
Misha Kahn
시선을 확 끄는 핑크 벨벳 커버. 화려한 겉모습과 다르게 책을 펼치자마자 여기저기 휘갈겨 쓴 메모가 적힌 페이퍼북으로 제작된 내용물. 제목도 그렇다. 어찌 의역을 해볼 수도 없을 만큼 어려운 제목.
Casually Sauntering, 캐주얼한 산책, the Perimeter of Now, 지금의 주위. 지금의 주위를 캐주얼하게 산책하는 것이라니. 게다가 perimeter는 수학적 용어다. 어딘가 계속 난해한 뉘앙스가 풍기는 이 책은 도대체 무엇일까.
Casually Sauntering the Perimeter of Now는 우리가 도쿄 아트북 트립에서 고른 책 중 유일하게 글이 위주인 책이다. 서점 POST에서 국내에 없는 수많은 책을 보며 감탄하던 중 시선을 끄는 외관에 집어 들어 여기저기 휘갈긴 낙서 같은 메모에 첫 페이지부터 압도당해 구매하게 되었다. 우리가 즐겨보는 아파르타멘토 매거진에서 낸 책이니 더욱 궁금했다.
뉴욕 브루클린을 베이스로 하는 미샤 칸은 디자인스쿨에서 가구를 전공하고 가구, 오브제 등을 작업하는 젊은 아티스트다. 이 책에는 10년 남짓한 그간의 작업물과 작업세계에 대해 그의 아티스트 동료들과 일상 속 대화에서 탐험한 것을 담았다. 캐주얼한 산책이라는 제목처럼 네일 살롱, 카페, 식당, 친구의 집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뤄진 대화들은 지극히 가볍지만 그 내용은 단순한 시시콜콜 농담 따먹기는 아니다.
![©Misha Kahn]()
책은 Glenn Adamson의 글로 열린다. 그와 인연은 2014년 뉴욕 아츠 앤 디자인 뮤지엄 (the Museum of Arts and Design, MAD)에서 아담슨이 관장으로 있을 당시 NYC Makers 기획 전시에서 칸의 피그 벤치를 처음 마주하며 시작되었다.
칸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피그 벤치(pig bench)는 그가 자란 미네소타의 시그니처 가구로 볼 수 있는 통나무 의자 피그 벤치를 새로운 형태로 제작한 의자다. 그는 디자인스쿨에서 가구를 만드는 것에 대해 최대한 작업이 간결해야 한다고 배웠다. 전통적인 피그 벤치는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다리 4개를 달아 손쉽게 만드는 물건이다. 그러나 칸은 이토록 간단한 가구를 만드는 데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속을 파내어 온갖 쓰레기를 한 겹씩 한 겹씩 채우고 굳혀 색색깔 요란한 나이테를 가진 피그 벤치를 만들었다.
어릴 적 토요일 아침마다 소파에 앉아 시리얼을 먹으며 티비로 만화를 보던 기억을 떠올리며 만든 Saturday Morning 시리즈는 풍선에 형형색색 피그먼티드 레진을 채워 넣어 굳힌 뒤 겉을 벗겨내 만든 작업물이다. 동화 속에서 나왔을 법한 다채로운 컬러와 모양을 한 이 작업물은 백설공주가 가진 지혜의 거울 같기도 하고, 마치 신데렐라 공주의 방에 있을 것처럼 밝고 예쁜 색감을 가졌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어린 시절 아름다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듯한 이름이나 모습과는 달리 어딘가 살짝 바람이 빠진 듯 슬픈 분위기를 풍긴다.
칸은 이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왜 있잖아요, 파티에 풍선을 들고 갔는데, 그 파티가 굉장히 재미있고 좋았어요. 그런데 한 번쯤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울어야 했던 기억이요.” 생각해 보면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소파에 앉아 시리얼을 먹으며 만화를 보는 일이란 언뜻 생각하기에 평화로운 이야기 같지만, 누군가에겐 그밖에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어 외로운 기억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칸은 속담이나 인용구, 혹은 어떠한 고정관념으로 ‘플레이’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역동적인 아름다움 너머로 슬픔이 종종 보인다.
피그 벤치, Saturday Morning, Kon TiKi. 모두 한 아티스트의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칸의 작업은 비정형성을 특징으로 한 사람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생김새와 작업 방식, 표현 방식 등에 있어 일관성이 없이 다양하다. 유리, 금속, 캐시미어, 지푸라기, 쓰레기, 레진, 플라스틱 등. 그가 활용하는 재료에도 한계가 없다.
그가 다양한 재료를 다룰 수 있는 힘은 불편함에서 온다고 한다. 까다로울수록, 불편할수록 더욱 도전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쉬운 것은 속임수 같다는 작가 미샤 칸, 마치 모터라도 단 듯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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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확 끄는 핑크 벨벳 커버. 화려한 겉모습과 다르게 책을 펼치자마자 여기저기 휘갈겨 쓴 메모가 적힌 페이퍼북으로 제작된 내용물. 제목도 그렇다. 어찌 의역을 해볼 수도 없을 만큼 어려운 제목.
Casually Sauntering, 캐주얼한 산책, the Perimeter of Now, 지금의 주위. 지금의 주위를 캐주얼하게 산책하는 것이라니. 게다가 perimeter는 수학적 용어다. 어딘가 계속 난해한 뉘앙스가 풍기는 이 책은 도대체 무엇일까.


Casually Sauntering the Perimeter of Now는 우리가 도쿄 아트북 트립에서 고른 책 중 유일하게 글이 위주인 책이다. 서점 POST에서 국내에 없는 수많은 책을 보며 감탄하던 중 시선을 끄는 외관에 집어 들어 여기저기 휘갈긴 낙서 같은 메모에 첫 페이지부터 압도당해 구매하게 되었다. 우리가 즐겨보는 아파르타멘토 매거진에서 낸 책이니 더욱 궁금했다.



뉴욕 브루클린을 베이스로 하는 미샤 칸은 디자인스쿨에서 가구를 전공하고 가구, 오브제 등을 작업하는 젊은 아티스트다. 이 책에는 10년 남짓한 그간의 작업물과 작업세계에 대해 그의 아티스트 동료들과 일상 속 대화에서 탐험한 것을 담았다. 캐주얼한 산책이라는 제목처럼 네일 살롱, 카페, 식당, 친구의 집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뤄진 대화들은 지극히 가볍지만 그 내용은 단순한 시시콜콜 농담 따먹기는 아니다.

책은 Glenn Adamson의 글로 열린다. 그와 인연은 2014년 뉴욕 아츠 앤 디자인 뮤지엄 (the Museum of Arts and Design, MAD)에서 아담슨이 관장으로 있을 당시 NYC Makers 기획 전시에서 칸의 피그 벤치를 처음 마주하며 시작되었다.
칸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피그 벤치(pig bench)는 그가 자란 미네소타의 시그니처 가구로 볼 수 있는 통나무 의자 피그 벤치를 새로운 형태로 제작한 의자다. 그는 디자인스쿨에서 가구를 만드는 것에 대해 최대한 작업이 간결해야 한다고 배웠다. 전통적인 피그 벤치는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다리 4개를 달아 손쉽게 만드는 물건이다. 그러나 칸은 이토록 간단한 가구를 만드는 데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속을 파내어 온갖 쓰레기를 한 겹씩 한 겹씩 채우고 굳혀 색색깔 요란한 나이테를 가진 피그 벤치를 만들었다.



어릴 적 토요일 아침마다 소파에 앉아 시리얼을 먹으며 티비로 만화를 보던 기억을 떠올리며 만든 Saturday Morning 시리즈는 풍선에 형형색색 피그먼티드 레진을 채워 넣어 굳힌 뒤 겉을 벗겨내 만든 작업물이다. 동화 속에서 나왔을 법한 다채로운 컬러와 모양을 한 이 작업물은 백설공주가 가진 지혜의 거울 같기도 하고, 마치 신데렐라 공주의 방에 있을 것처럼 밝고 예쁜 색감을 가졌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어린 시절 아름다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듯한 이름이나 모습과는 달리 어딘가 살짝 바람이 빠진 듯 슬픈 분위기를 풍긴다.
칸은 이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왜 있잖아요, 파티에 풍선을 들고 갔는데, 그 파티가 굉장히 재미있고 좋았어요. 그런데 한 번쯤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울어야 했던 기억이요.” 생각해 보면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소파에 앉아 시리얼을 먹으며 만화를 보는 일이란 언뜻 생각하기에 평화로운 이야기 같지만, 누군가에겐 그밖에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어 외로운 기억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칸은 속담이나 인용구, 혹은 어떠한 고정관념으로 ‘플레이’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역동적인 아름다움 너머로 슬픔이 종종 보인다.










피그 벤치, Saturday Morning, Kon TiKi. 모두 한 아티스트의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칸의 작업은 비정형성을 특징으로 한 사람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생김새와 작업 방식, 표현 방식 등에 있어 일관성이 없이 다양하다. 유리, 금속, 캐시미어, 지푸라기, 쓰레기, 레진, 플라스틱 등. 그가 활용하는 재료에도 한계가 없다.
그가 다양한 재료를 다룰 수 있는 힘은 불편함에서 온다고 한다. 까다로울수록, 불편할수록 더욱 도전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쉬운 것은 속임수 같다는 작가 미샤 칸, 마치 모터라도 단 듯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