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bour Pre. ss


Weaving as Metaphor by Sheila Hicks



하버 프레스 도쿄 북 하울의 마지막 책은 Sheila Hicks의 Weaving as Metaphor. 이 책은 우리가 서점 POST에서 발견한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타일 아트의 장인 셰일라 힉스(Sheila Hicks)를 만나게 되었고, 테이블 북 이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책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책 디자이너 Irma Boom이 디자인한 이 책은 디자인으로 Hicks의 작품 세계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벽돌만큼 두꺼운 순백의 책, 옆면은 한 장씩 뜯어 재단한 듯 거친 단면을 가졌다. 외관부터 압도적인 이미지를 가졌다.



디자인적 힘은 겉에서 그치지 않는다. 순백의 면지를 지나, 직조 틀 안의 그리드(grid) 같은 형태로 빼곡히 적힌 작가의 이름을 담은 페이지를 넘기면 왼쪽에는 작가의 작품 사진이, 오른쪽에는 큼직하게 책 제목이 쓰여있다. 그리고 따라오는 작가의 사진. 검은색 어두운 배경에 은빛 숏컷의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작가가 나온다. 이후로도 글씨 크기가 작아졌다, 커졌다 하며 하나의 연주곡처럼 다양한 디자인 변주가 계속된다.





Weaving as Metaphor는 2006년 Bard Graduate Center New York City에서 주관한 전시 도록이다. Hicks의 방대한 작업물 가운데 손바닥 크기 정도로 작은 사이즈의 작품을 세계 각지에 흩어진 컬렉터와 미술관 등에 협조를 구해 작품을 빌려와 했던 특별 전시다.
전시를 기획한 Nina Stritzler-Levine은 우연한 계기로 Hicks의 작은 사이즈의 작업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작가의 소규모 작업들이 예술성과 수공예, 디자인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며, 장식예술이 하급 문화로 사료되었던 인식을 흔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 실들이 가로와 세로로 만나며 이루는 모습은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데, 실제 고대 그리스에서는 텍스타일을 통해 정치나 사회 등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고 했다.




이를 알고 나면 이 책의 디자인 역시 서사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날줄과 씨줄이 만나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작가의 철학처럼 이 책은 글씨가 작아졌다, 커졌다 하며, 컬러의 대비를 통해, 여백 공간을 십분 활용해 내용과 호흡하며 디자인으로 하나의 서사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셰일라 힉스 전시가 열리고 있어 다녀왔다. 전시는 Weaving as Metaphor에서 작은 작품을 다룬 것과 반대로 공간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큰 사이즈 작품 3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시장의 한 켠에는 셰일라 힉스와 관련된 책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중 한 전시 도록에 실린 인터뷰가 가슴에 남았다. 인터뷰어는 인터뷰이가 거장이기에 그의 오랜 작업에 대해 상당히 공부를 많이 하고 인터뷰를 준비했던 것 같다. 긴장한 인터뷰어에게 힉스는 말했다.


“당신이 나의 작업 모두를 이해하려고 아주 노력한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 전시는 지금, 여기에, 그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전시장을 나와 걷는데 자꾸만 그 구절이 생각났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티스트로서 어떻게 이렇게 관대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작품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무언가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